'어거스틴'이라고도 함. 히포의 주교. 서방교회 교부이며 대표적 신학자(354-430년). 교회사에서 '신약 시대 이후 가장 탁월한 기독교인이며 위대한 인물'로 평가된다(A. Souter).
1. 생애: 북아프리카 누미디아(Numidia) 주 타가스테(Tagaste)에서 이교도인 아버지 파트리시우스(Patricius)와 기독교인인 어머니 모니카(Monica) 사이에 태어났다. 16세 때 카르타고에서 수사학을 배웠고, 20세 이후 문법학과 수사학을 가르쳤다. 이 시기에 9년간 마니교(Mani)에 심취하였고, 낯선 여자와 14년간 동거하며 372년에는 아들(Adeodarus)을 낳기도 하는 등 회심하기 전까지 방탕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마니교에 실망하고 384년 밀라노에 가서 주교 암브로시우스(Ambrosius)를 통해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런 전환의 시기에 그의 정신적 갈등과 결단은 「고백록」(Confessions) 7, 8권에 잘 나타난다. 이 책에 의하면 그는 "책을 들고 읽어라"는 신비로운 소리를 듣고 성경을 펼쳤는데, 이때 로마서 13장 13-14절을 읽고 회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386년, 32세 때의 일이다. 그리고 387년 부활 주일에 암브로시우스에게 세례를 받고, 388년 고향 타가스테로 돌아가 수도원을 세웠다. 그는 수도원 생활을 통해 지도자로서의 훈련을 받고 396년 히포의 주교가 되어 죽기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410년 로마의 함락 소식을 접하고 13년간에 걸쳐 대작 「신의 도성」(신국, City of God)을 집필했다. 430년 히포가 반달 족에 포위되던 시기에 별세하였다.
2. 사상 : 그는 사도 시대 이후 희미해져 가던 구속 은혜의 교리를 바울 이후 가장 분명하게 확립시킨 인물로 평가된다. 특히 반(反) 펠라기우스 논문인 「영과 율법에 관하여」(On the Spirit and Letter), 「자연과 은혜에 관하여」(On Nature and Grace)에서 그는 인간의 원죄와 전적 부패, 예정론에 관한 정통 교리를 확립하였다. 또 배타적 교회론을 주장하는 도나투스주의자들(Donatist)과의 논쟁에서는 보편적 교회론과 성례전, 섭리론을 명쾌하게 정리하였다. 대표적 작품으로는 「고백록」(400년)과 「신국」(410-423년)을 비롯한 수많은 논문·주해서·강해집 등이 있다. 그는 바울 사상을 후세의 종교개혁자들에게 이어주는 가교(架橋)로서, 가톨릭을 비롯한 루터교, 개혁교회, 성공회의 신학적 기반을 마련해 준 인물로 평가된다.
3. 고백록 내용
1-9권은 스스로의 죄가 깊다는 것을 단지 표면적 현상만으로서가 아니라 행위의 밑바닥에 있는 동기 자체로부터 고백하고 엄격히 비판한다. 입신출세를 위해 수사학 등을 배울 때 빠졌던 방탕한 생활, 마니교나 점성술에 미혹되었던 일, 드디어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와 밀라노의 사교 암브로시우스의 지도에 의해 회심하기까지의 일을 서술하고 있다. 수도생활에 들어가려고 귀향하는 도중 어머니의 죽음을 맞아, 어머니의 경건한 생애를 이야기하고 9권을 끝맺는다. 10권에서는 당시의 히포레기우스 사교로서의 자기관찰·자기비판을 행한다.
마지막 세 권은 성서의 신·세계·시간·영원에 대해 명상하고, 시간론을 전개한다.
참고문헌 : 교회용어사전(생명의 말씀사), 위키 백과
영어 번역판 : Translated by E. B. Pusey (Edward Bouverie) 옥스퍼드 교수
Edward Bouverie Pusey (22 August 1800 – 16 September 1882) was an English churchman, for more than fifty years Regius Professor of Hebrew at the University of Oxford. He was one of the main promoters of the Oxford Movement.
개혁주의 신학에 기초한 출판문화선교
When you come, bring the cloak that I left with Carpus at Troas, and my scrolls, especially the parchments.
(2Timothy 4:13 NIV)